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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장인물, 줄거리, 감상평 보기

by 새정보나라 2025. 6. 11.

줄거리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그의 삶과 시대, 그리고 가족의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고집스럽고 무뚝뚝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딸인 화자는 그와 함께한 과거를 기억해낸다.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미움, 이해하지 못했던 말투와 행동들, 모두가 이제는 해체되고 복원되며 다른 얼굴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는 생전 민주화 운동을 했던 활동가이자 노동자였다. 그러나 그는 가족에게 그 사실을 특별히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술에 취해 무뚝뚝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기억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가족에게는 불편하고 불친절했던 아버지가, 그의 죽음을 계기로 점점 ‘이해 가능한 사람’이 되어간다. 장례식장으로 찾아오는 이들, 남겨진 글들,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만난다.

줄거리는 겉보기에 단순하다. 한 인물의 장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회상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한국 현대사의 단면과 함께,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긴 여정인지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결국,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지 못했던 이해와 용서를, 죽음 이후에 조심스럽게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등장인물

이 소설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다. 그는 생전에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고, 가족들과 단절된 채 살아갔다. 외면적으로는 고집스럽고 고루한 인물이었지만, 점차 독자는 그의 속 깊은 신념과 고독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등졌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그 역시 상처를 안고 살아갔던 한 인간이었다. 작가는 그 복잡하고 모순적인 면모를 아주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그려낸다.

화자인 ‘딸’은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다. 동시에 아버지를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를 ‘불편한 존재’로 기억하면서도, 그의 죽음 이후 그 공백 속에서 진짜 아버지를 만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그녀의 내면 여정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성찰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를 되짚으며 자신의 상처도 마주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비로소 꺼내게 된다.

그 외에도 장례식장을 찾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아버지의 동료들, 옛 친구들,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 그들은 아버지의 또 다른 얼굴을 전해주며,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그의 삶을 복원해나간다. 이 모든 인물들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결코 혼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인들이다.

감상평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는 동안 내내 마음 한편이 먹먹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애도하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곁에 두고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들이 떠난 뒤에야, 우리가 몰랐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가. 이 소설은 그 뒷북 같은 사랑과 후회의 감정을 너무도 정확하게 짚어낸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아버지를 단순히 ‘희생한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적 신념을 가진 활동가였지만, 가족에게는 결코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작가는 그 모순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순 속에서 인간의 진짜 얼굴이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그 정직함이 너무 좋았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떠나간 누군가가 떠오른다. 살아 있을 땐 불편했고, 가까이하기 어려웠지만, 그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왠지 더 슬퍼지는 그런 존재. 우리는 그들에게 다 말하지 못했다. ‘고마웠어요’, ‘미안했어요’, ‘사랑했어요’ 같은 말들을. 그래서 이 소설은 결국 독자 각자에게 말을 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더 많이 들여다보라고. 너무 늦기 전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주 조용히 말을 건네는 책이다. 떠난 사람의 삶을 통해, 남은 사람의 감정을 치유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치유의 방식은 다름 아닌 ‘이해’와 ‘기억’이다. 이 책은 그래서 슬프지만, 동시에 따뜻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의 이름을 다시 조용히 불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