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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등장인물, 줄거리, 감상평 보기

by 새정보나라 2025. 6. 13.

줄거리

잊힌다는 것은 늘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일어난다. 황정은 작가의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은 바로 그 ‘잊힘’과 ‘기억’ 사이의 간극을 조용히 건드리는 책이다. 이 책은 하루하루를 무심히 지나치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 남겨졌던, 그러나 말로 꺼내지 못했던 감정들을 글로 붙잡아낸다. 거창한 이야기나 극적인 사건은 없다. 오히려 아주 작고 평범한 순간들, 예컨대 우산을 놓고 온 하루, 문득 생각난 오래전 친구, 버스 안에서 본 풍경 같은 것들이 작가의 문장을 통해 생생한 ‘기억’으로 변한다.

이 책은 줄거리라고 할 수 있는 전개는 없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분명하다. 작가는 기록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을 조금씩 되찾는다. 마치 수많은 퍼즐 조각을 모아 하나의 삶을 복원하듯, 글 하나하나가 작가의 지난 시간과 감정을 꿰어 붙인다. 그 글을 읽는 독자 역시, 자신이 놓쳐버린 감정이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작가의 기록인 동시에, 우리 각자의 잃어버린 조각을 꺼내는 열쇠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책 속에는 특정한 등장인물이 명확히 그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을 따라가다 보면, 익명성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 슬픔을 꾹꾹 눌러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그 삶의 자락들이 문장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모두를 꿰는 인물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황정은이라는 이름 뒤에 있는 이 기록자는, 말없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때로는 같이 아파하고, 끝내 조용히 기록한다.

감상평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숨이 잠깐 멎는 느낌’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너무 사소해서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문장들이 가슴 한켠을 쿡 찌른다.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내가 느꼈던 건 이런 감정이었구나’ 싶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겪으면서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놓쳐버린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모든 ‘놓친 감정들’을 아주 정중하게 붙잡아준다.

인상 깊었던 건, 작가가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어떤 주장도, 결론도 없다. 그저 조용히 보여주고, 조용히 지나간다. 하지만 그 여운이 너무 길다. 어떤 책은 덮자마자 잊히지만, 이 책은 덮은 후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계속 읽히는 느낌이다. 나도 내 일상을 좀 더 잘 기억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내 감정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글로라도 적어두고 싶어졌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은 어쩌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감정’에 관한 책이다.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 사라져서는 안 되는 감정들, 이름 붙이지 못했던 마음들. 그런 것들을 위해 쓰인 글이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면, 혹은 스스로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 시작에 딱 알맞은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