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눈먼 자들의 국가』는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긴 대화이자 사유다. SF 소설가 김초엽과 인권 변호사 김원영이 서로의 삶과 생각을 주고받는 편지 형식의 대화를 통해 구성된 이 책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외면했던 세계를 마주하게 만든다. 제목에서 보이듯, 이 책은 '눈먼 자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눈 감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두 저자는 장애라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자, 동시에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해, 사회 시스템의 불평등, 기후 위기의 윤리, 인간 중심주의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말 그대로,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집요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김초엽의 글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김원영은 철학적이고 현실적인 사유로 답한다. 두 사람은 장애를 단지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과 연대의 출발점으로 바라본다. ‘정상’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배제해왔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드러낸다.
등장인물
이 책의 등장인물은 ‘저자 자신’들이다. 김초엽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문학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글을 통해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고, 상상의 세계 속에서 현실을 확장하는 사람이다.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작가답게, 그는 감정을 섬세하게 짚고 언어화하는 데 탁월하다.
김원영은 법을 통해 사회와 싸워온 변호사이자 작가다. 그는 스스로의 휠체어를 ‘몸의 확장’으로 받아들이며, 기존의 사회 질서 속에서 소수자들이 어떻게 말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고민한다. 그는 단지 피해자도, 혁명가도 아니다. 그는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의 진짜 인물은 독자다. 이 책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당신이 외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독자는 읽는 내내 스스로의 ‘시선’을 되돌아보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외면했던 세계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감상평
『눈먼 자들의 국가』는 불편한 책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때로는 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지금,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세상이 점점 더 분열되고, 약자는 점점 더 침묵 속으로 밀려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특히 감명 깊었던 건, ‘비장애 중심의 사회’가 얼마나 많은 장벽을 세우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것은 단지 휠체어나 보청기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요 그 자체였다. 나조차도 그런 시선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뼈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비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희망이 있다. 김초엽과 김원영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닮지 않아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단순히 읽고 끝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묻고 있다면 — 이 책은 가장 진지하고 깊은 답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