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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등장인물, 줄거리, 감상평 보기

by 새정보나라 2025. 6. 17.

줄거리

『지극히 내성적인』은 한 순간에 세계의 중심을 잃은 한 여성 ‘우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오랜 연인이자 거의 가족과 같았던 연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우미는 삶의 구조와 리듬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그는 더 이상 이전의 말투로 말할 수 없고, 예전의 장소에 예전처럼 머무를 수 없다.

그녀는 연우와 함께 지냈던 공간을 떠나 서울을 벗어나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거리에서 아주 천천히 회복을 시도한다. 그러는 동안 그는 연우와 함께 나눈 기억을 반추하고, 떠나보내지 못한 말들을 되새긴다. 상실은 끝났지만,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의 말과 감정, 반복되는 일상 속 고통에 집중한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우미는 아주 조금씩 세상에 다시 말을 건다. 지극히 내성적이어서 쉽게 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침묵이 아닌 말로 세계에 다시 들어간다. 그 과정이 이 작품의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서사다.

등장인물

우미는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겉으로는 무덤덤해 보일 수 있지만, 내면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요동친다. 그는 연우를 잃은 뒤, 슬픔을 드러내는 대신 ‘조용히 무너지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독자는 우미의 감정에 오히려 더 몰입하게 된다. 그는 내성적이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그 조용한 회복이 이 이야기의 힘이다.

연우는 부재하지만 책 전반에 걸쳐 가장 강하게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는 우미와 삶을 공유했던 연인이며, 동시에 우미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사람이다. 연우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회상과 기억 속에서 늘 살아 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을 지나 살아 있는 이의 이야기가 된다.

주변 인물들 – 낯선 동네 사람들, 우연히 만나는 타인들, 말 걸기를 망설이는 동료들 – 이 모두는 우미의 회복을 조금씩 돕는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존재만으로도 우미의 일상에 틈을 만들어 준다. 그 틈에서 그는 다시 살아간다.

감상평

『지극히 내성적인』은 소리 내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다. 세상은 종종 감정을 빠르게 소비하길 바라지만, 이 소설은 조용히, 천천히, 자기 방식대로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주 작게 안도했다. “내 슬픔도 이렇게 말 없이 존재해도 괜찮구나.”

정세랑의 문장은 언제나 부드럽고 조심스럽다. 말 한 마디, 감정 하나를 함부로 내뱉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그 여백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상실을 극복한다’는 거창한 서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계속 살아간다’는 작은 문장들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나는 다시 말할 수 있을까?”였다. 그 말은 곧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세상에 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같다. 이 소설은 그 질문에 조용히 “그럴 수도 있어”라고 말해준다. 확신은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 그게 이 소설의 따뜻함이다.

『지극히 내성적인』은 상실을 겪은 사람만이 아니라, 지금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내성적인 존재들을 위한 책이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 “나도 괜찮다고 말해도 될까?”라는 마음을 가진 모두에게 이 책은 조용히 “괜찮다”고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