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돌봄과 사랑의 교차로에서』는 제목 그대로, ‘돌본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같은 의미일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이야기다. 주인공 ‘상우’는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지 오래된 30대 남성으로, 서울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쓰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병든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그의 삶은 전혀 다른 궤도로 흘러간다. 가족에게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그는 오래전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희생, 형제들과의 애매한 거리. 이 모든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그는 ‘돌봄’이라는 이름의 책임을 떠안게 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책임 그 자체가 아니라,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오는 감정들이다. 상우는 ‘사랑하지 않아도 돌보아야 하는가?’, ‘돌본다는 건 곧 사랑의 증거인가?’ 같은 질문 앞에 무력해지기도 하고, 점점 더 분열되는 내면을 경험한다. 그 와중에도 그는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그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은 삶’ 속에서의 유일한 감정이다.
등장인물
상우는 섬세하고 정직한 인물이다. 그의 시선은 차갑지 않지만, 애써 따뜻하지도 않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지만, 때때로 그 시선조차 무력하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독자는 그의 고백을 믿게 되고, 그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그는 가족의 틀에 속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가족에게 상처를 입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를 부드럽게 숨기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어머니는 전통적이고, 자기희생적인 한국식 ‘모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녀는 이상화되지 않는다. 아들을 사랑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여전히 사랑한다. 이 모순이 곧 이 소설의 긴장감이다. 그녀는 상우에게 책임과 죄책감을 동시에 남기고 떠난다.
상우의 연인, 친구들, 간병센터의 간호사들 등은 모두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그들 각자의 말과 태도가 상우의 세계를 조금씩 흔든다. 특히, 상우와 친구 민혁과의 대화는 ‘돌봄’과 ‘자기 존재를 지키는 일’ 사이의 경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감상평
『돌봄과 사랑의 교차로에서』는 감정의 무게가 아주 묵직한 책이다. 그러나 그 무게는 ‘억지로 짊어진 것’이 아니라, ‘내려놓을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내 안의 책임과 가족, 사랑이라는 감정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특히 “당신은 누구를 돌보며 누구에게 버려졌는가”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남았다.
박상영은 이번 작품에서 유쾌함을 덜어내고, 서늘한 정직함을 택했다. 그 덕분에 이 이야기는 ‘성소수자의 고통’만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비추는 책이 되었다. 고립, 침묵, 고백, 후회 — 이 모든 감정이 잘게 쪼개져 문장 안에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은 절망을 말하지만, 절망 속에서 끝내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불완전한 위로’를 거부함으로써 더 진실한 감정을 남긴다. 그래서 이 책은 끝내 위로가 되고 만다. 그 어떤 말보다도 조용한 방식으로.
『돌봄과 사랑의 교차로에서』는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돌보면서도 멀어지는 그 복잡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정체성이나 사회적 위치와 관계없이, 가족이라는 단어에 상처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