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보통의 언어들』은 줄거리가 있는 서사가 아니다. 대신 이 책은 우리가 매일 말하고 듣지만,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감정과 단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산문집이다.
‘슬픔’, ‘질투’, ‘사랑’, ‘외로움’, ‘고마움’, ‘부끄러움’, ‘기억’, ‘기다림’ 같은 감정의 이름들이, 한 챕터마다 하나씩 등장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김이나는 작사가이자 한 사람의 감정 경험자로서 풀어낸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단어들에 담긴 서늘함, 따뜻함, 쓸쓸함, 단단함의 층위들을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각 글은 짧지만, 그 끝에는 독자가 스스로 감정의 바닥에 닿을 수 있도록 여백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설명해주는 책이 아니라, 읽는 사람 스스로 자기 감정을 되짚게 만드는 ‘정서 거울’ 같은 책이다.
등장인물
등장인물은 없다. 대신 이 책에는 김이나 자신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있다.
김이나는 자신의 창작 과정과 감정 실패, 인간관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그러나 그 경험은 절대 자기 자랑이나 고백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당신도 그랬던 적이 있냐”고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 물음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등장하는 것은 감정과 단어들이지만, 그 단어들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독자 자신이 결국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 된다.
“나도 그런 적 있었어”, “그건 나랑은 좀 달라”, “나는 아직 그런 말을 못 해봤어”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된다.
감상평
『보통의 언어들』은 ‘감정을 분석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감정을 안아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래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다친 적이 있었고, 애써 외면했던 기억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조용히 마주하게 만드는 글. 설명하지 않고, 그저 "이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문장. 그게 이 책의 진짜 매력이다.
가장 좋았던 점은, 김이나의 언어가 너무 ‘설명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감정의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은 늘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야 더 솔직하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챕터는 마치 미완성된 일기장 같고, 어떤 글은 편지를 쓰다 멈춘 느낌이 난다. 그 불완전함이 좋다. 그게 감정의 본질이니까.
한 구절이 오래 남았다.
“감정은 설명될 수 없어서 감정이고, 이해받지 못해도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시간을 선물했다.
무심코 지나온 감정들에 다시 눈길을 주고, 말 한마디에 담긴 마음의 무게를 다시 느껴보게 됐다.
누군가와 다투고 나서, 문득 미안했던 기억,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순간, 오래된 감정의 파편들이 조용히 다시 떠오른다.
『보통의 언어들』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그래서 더 자주, 천천히, 반복해서 읽고 싶다.
이해보다 공감, 정답보다 여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