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눈으로 만든 사람』은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돌보겠다고 나선다. 그 선택은 그리 대단한 결단처럼 보이지 않지만, 소설이 전개될수록 그 결정 안에 스며 있는 죄책감, 후회, 애정, 어린 시절의 응어리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주인공과 아버지는 평생 가까웠던 적이 없다. 말수가 적은 아버지,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가족 안에서 주인공은 늘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병으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과거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말하지 않았던 마음들, 알지 못했던 기억들, 용서와 이해의 한계가 교차한다.
소설의 끝에서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를 ‘눈으로 만든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쉽게 녹아버릴 수 있는 존재, 그러나 가장 순수하고 차갑게 남는 존재.
이 비유 하나가 소설 전체의 정서를 단단하게 담아낸다.
등장인물
주인공 (아들) –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회사와 가정을 돌보면서 동시에 병든 아버지를 간병한다. 그에게 아버지는 늘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병간호를 통해, 그는 오히려 자기 안의 공백과 감정을 들여다본다. 그 내면은 복잡하고 조용하다.
아버지 – 말이 없고 고집이 세며, 표현에 인색했던 사람. 그러나 병이 깊어지고 약해지는 몸을 통해, 그는 비로소 인간적인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위엄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직함을 얻게 된다.
어머니와 아내, 아이 –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주인공이 감정을 균형 잡는 축이다. 특히 아내는 남편의 돌봄과 감정의 후퇴를 지지하면서도, 자신 역시 감정적으로 지치고 있다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이들 모두가 “보통 사람의 돌봄”이라는 현실을 상징한다.
감상평
『눈으로 만든 사람』은 감정을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물리적으로 돌보는 순간을 통해, 잊고 있던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사랑이란 꼭 따뜻하고 포근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랑은 불편하고, 억울하고, 무너진다.
하지만 그 감정조차 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의 기억이자 유대가 된다.
정용준의 문장은 슬프지 않지만 먹먹하다.
짧고 단정하지만, 문장마다 눌린 감정이 조용히 새어 나온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병실이라는 무거운 배경 안에서도 독자에게 너무 진하지 않은 슬픔을 준다.
오히려 잔잔하고 깨끗하게 가라앉는 물결처럼, 마음 깊이 오래 남는다.
『눈으로 만든 사람』은 돌봄의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졌던 감정들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시간들,
말하지 않아도 알았기를 바랐던 마음들.
그 조용한 기록이, 눈처럼 쌓여 우리의 기억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