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어느 날, 나는 죽었다』는 일본 작가 스미노 요루가 쓴 성장소설로,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조심스럽게 넘나드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평범한 고등학생.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의식이 남아 떠도는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시작점이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죽은 뒤, 남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살아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아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죽음 이후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독특한 설정은, 평범한 일상 속 감정들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주인공은 살아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가족의 진심, 친구의 고민, 짝사랑의 아픔, 선생님의 외로움 등을 죽은 뒤에야 알게 된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크게 기억되지 않을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그를 둘러싼 관계들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때로는 깊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말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서서히 다가간다.
이 소설은 죽음 자체를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란 어떤 빛을 남기고 가는가’에 더 집중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떠난 뒤에도 남겨진 이들의 일상을 통해, 오히려 삶의 의미를 배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제시되며, 이야기는 점점 감정의 깊이를 더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아주 작고 사소했을지라도, 그것이 결코 의미 없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등장인물
주인공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고, 친구들과도 적당히 어울렸지만 누구에게도 깊이 다가가진 못했다. 가족과의 관계도 무던했지만 특별하진 않았다. 그랬던 그가 죽은 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서 존재해왔는지를 알게 된다. 그는 이 소설의 중심이자, 동시에 독자의 시선을 대신하는 관찰자다. 그의 시선은 사랑, 후회, 애착, 오해 같은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독자의 공감을 이끈다.
가장 중요한 주변 인물은 주인공의 절친이었던 친구 ‘하야토’다. 하야토는 겉으로는 늘 웃으며 주인공과 장난을 치던 친구였지만, 주인공의 죽음 이후 그 내면에 깊은 상실감을 드러낸다. 하야토는 주인공과의 추억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그가 말하지 못한 속마음들까지 되짚는다. 이 과정에서 하야토는 슬픔을 애써 외면하기보다, 슬픔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인물로 성장해 나간다.
또 다른 인물은 주인공이 짝사랑하던 같은 반 친구 ‘미즈키’다. 주인공은 살아 있을 때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했고, 그 감정은 그대로 남겨졌다. 하지만 죽은 뒤에도 그녀를 향한 애틋함이 남아 있으며, 미즈키 역시 주인공의 존재를 어렴풋이 그리워한다. 이 둘 사이에는 실제로 맺어진 인연은 없지만, 그 부재와 아쉬움이 묘하게 오래 남는다.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전하지 못한 감정’에 대한 씁쓸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의 부모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아들을 떠나보내고 무력감에 빠진다. 아버지는 침묵으로 고통을 견디고, 어머니는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아들을 애도한다. 주인공은 그들을 지켜보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살아 있을 때는 결코 다 보이지 않았던 감정의 층위를, 죽은 뒤 비로소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감상평
『어느 날, 나는 죽었다』는 그 제목만 보면 비극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매우 조용하고 따뜻한 소설이다.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책이 다루는 진짜 주제는 ‘관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해하고, 또 얼마나 자주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가.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말한다. “비록 늦었더라도, 당신의 존재는 누군가에게 소중했어요.”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주인공이 자신이 남긴 흔적들을 하나씩 따라가며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나 스스로의 관계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크게 기억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인생에 깊게 남아 있다는 사실. 그런 생각은 뭉클함을 넘어서 가슴속에 오래 남는 감정을 만들었다.
문장도 매우 담백하다. 장황한 수식 없이도 감정을 깊이 전달하는 힘이 있다. 주인공의 목소리는 슬프지만,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을 걸으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마지막엔 누군가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안녕, 잘 살아줘.”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가장 잘 요약하는 한 줄이자, 나에게도 오랫동안 남았다.
이 책은 삶이란 결국 관계 속에서 기억되는 일이며, 우리가 남기는 감정은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비로소 ‘사라짐’이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죽었다』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지금, 말하고 싶은 감정을 미루지 않고, 그 마음을 건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