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일본 작가 마치다 소노코가 쓴 에세이 형식의 산문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실제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저자가 그곳에서 겪은 일상, 관찰, 감정들을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히 직업적 경험담을 넘어, 예술과 인간, 공간과 감정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줄거리는 사실 ‘사건 중심’의 전개는 아니다. 하루하루의 미술관 풍경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 하루는 똑같은 반복이 아니다. 매일 마주하는 작품들이나 관람객은 같아도, 저자의 감정과 시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처음 미술관에 입사하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서, 하루 종일 서서 관람객을 지켜보는 근무 방식,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매뉴얼, 동료들과의 관계, 미술관이 폐관한 뒤의 정적—이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려진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저자가 말하는 ‘작품과의 교감’이다. 경비원이지만 하루 종일 한 작품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근무 특성상, 그는 자연스럽게 작품과 가까워진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 동안 작품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는 작품을 마치 ‘사람’처럼 대하며 느낀다. 조각상이 미세하게 변하는 느낌, 유화 속 눈빛이 오늘은 달리 느껴지는 감각, 전시장 안의 조명과 온도 변화에 따른 분위기 등은 경비원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차이들이다.
또한 그는 관람객을 관찰하며, 그들이 미술을 대하는 방식에서 시대의 흐름과 인간의 다양성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한 작품 앞에서 몇 시간이나 머무른다. 어떤 아이는 작품보다 경비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기도 한다. 저자는 그 모든 행동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호기심을 발견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처럼 받아들인다.
이 책은 예술에 대해 거창한 담론을 펼치지 않지만, 독자에게 예술을 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면 보통 작품만 본다. 그러나 저자는 작품을 보는 사람들, 공간의 흐름, 그림을 둘러싼 공기까지 포착하며, 미술관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현해 낸다.
등장인물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등장인물’은 없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인 마치다 소노코 그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인물로 독자 앞에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간,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녀는 처음에는 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도, 뚜렷한 목표도 없이 미술관에 들어선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이었고, ‘경비’라는 말 자체가 예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미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자신에게 점점 ‘일터’ 이상의 의미가 되어감을 느낀다. 그 변화는 대단히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점점 작품과 교감하게 되고, 관람객의 시선에 자신도 감응하며, 자신이 단순한 감시자가 아닌 ‘풍경의 일부’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책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도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먼저 동료 경비원들. 대부분 예술과 전혀 관련 없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그들만의 관점이 독특하고 때로는 깊다. 그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무표정하게 근무하다 문득 터져 나오는 농담, 근무 후 마시는 커피 한 잔 같은 순간들이 이 책을 풍성하게 한다.
또한, 관람객 역시 이 책의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다. 데이트 중인 커플, 시험을 앞둔 학생, 우울한 하루를 달래기 위해 온 직장인, 자녀를 데려온 부모 등. 저자는 이들의 작은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때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 상상은 사실과는 다를지 몰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에게 깊이 공감하게 되는 힘을 가진다.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바로 저자 자신이다. 그녀는 책 전반에 걸쳐 조용하지만 뚜렷한 감정의 변화, 사고의 깊이를 드러낸다. 처음에는 외롭고 낯설었던 미술관이 점점 그녀의 삶을 감싸 안고, 그녀는 그 안에서 점점 단단해진다. 말수가 적고 눈에 띄지 않던 한 경비원이 어느새 작품과 함께 미술관의 일부로 녹아드는 과정은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서사다.
감상평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조용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책이다. 읽는 내내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물결이 천천히 나를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든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보통 ‘관람하는 공간’으로만 여겨지기 쉬운데, 이 책은 그 공간이 ‘사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도 예술가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의 시선으로 말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예술을 특별히 해석하려 들지 않고, 그저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은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책은 이해보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시간’과 ‘함께 있는 태도’라고 말한다. 하루 종일 작품 앞에 서 있는 저자는 예술을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깊이 그 작품들과 교감한다. 그 경험은 독자에게도 ‘나도 그렇게 예술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이 가진 ‘존재에 대한 존중’이 참 좋았다.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흔히 예술의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들이야말로 예술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며 보호하는 사람들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자신이 작품을 감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 시선은 우리에게 인간의 가치와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문장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심이 전해진다. 소란스럽지 않은 감정의 파동, 관찰자의 시선, 그리고 타인의 삶에 대한 조용한 존중이 책 전체에 녹아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꼭 한 번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혹시라도 이 책의 저자와 같은 경비원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꼭 인사를 건네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 시간이 저에게도 참 따뜻했어요"라고.